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례자 요한 (문단 편집) == 역사적 세례자 요한 ==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일부는 아예 '''예수의 스승'''이었을 가능성까지 제안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육촌]] 지간인 '''친척'''인데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다.[* 단, 다른 부분에서는 대단히 신빙성이 높은 루카 복음이지만 요한이 엘리쉐바의 뱃속에 있을 때 엘리쉐바가 찬가를 불렀다는 내용만큼은 그다지 역사적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모두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복음서가 모두 언급하고 있다. 즉 세례자 요한이 먼저 부르짖고 나선 내용이므로 이 점에서 예수가 요한의 이러한 정신을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며, 예수 집단에겐 상당히 불편한 진실인데도 이 사실이 삭제될 수 없었던 건 초기 예수 집단 대부분이 해당 사건의 목격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당연히 목격은 하지 못했을 [[동방박사]]라던가, [[베들레헴]] 탈출 설화, 영아 살해 사건 등등이 실제 역사적 신빙성은 떨어지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J.D.G. 던은 당대에 세례자 요한의 영향력은 예수를 훨씬 능가했다고 언급했다. E.P. 샌더스 역시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반면에 요한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수가 처음에는 요한의 제자로 시작하였으며, 요한의 체포와 처형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목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즉 예수는 요한을 상당부분 계승하였고, 이후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정립되면서 예수의 우위를 인정하는 요한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게 이 주장의 핵심이다.[* 비평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당혹성의 기준(criterion of embarrassment)의 전형적인 예로, 저자를 당혹시키거나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약화시키는 진술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이다. 예수가 요한보다 훨씬 위대한 이, 메시아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복음사가들이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내리는 입장이었음을 인정한 것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요아힘 그닐카{{{-2 ''Joachim Gnilka''}}}는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되, 그의 제자가 되지는 않고서 세례자 운동을 수용하고 그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본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스승-제자 관계로 보기엔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한동안 세례자의 제자 동아리에 속했다는 주장이 있다. ...예수가 한동안 요한의 제자였다고 인정하는 데서 더욱 강력하게 발생하는 문제인즉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의 나중 활동이 세례자의 활동과 적지않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는 요한과 관계를 끊어 버렸거나 아니면 그에게서 어떤 특별한 하느님의 수임 또는 소명에 마주치게 되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두 경우 다 그러나 그런점을 가리키는 대목은 없다. 마르 1,10-11도 후자의 근거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확실히 예수도 심판을 고지했다. 그러나 예수의 심파설교는 독자적인 함축이 있고 하느님 나라 설교와 떨어질 수 없다.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의미로도 분리할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한 결론인즉 그러므로,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되, 그의 제자가 되지는 않고서 세례자 운동을 수용하고 그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https://www.bundobook.co.kr/goods/view?no=1701|《나자렛 예수》{{{-2 ''Jesus von Nazaret: Botschaft und Geschichte''}}}]], 요아힘 그닐카{{{-2 ''Joachim Gnilka''}}}, 정한교 번역, 111-113쪽.) 세례자 요한의 제자 여부 대해서는 요아힘 예레미야스{{{-2 (Joachim Jeremias)}}}의 ''Neutestamentliche Theologie. Erster Teil: Die Verkündigung Jesu'', Gütersloh ^^2^^1973,51-53을 참고하라.] 아무튼 확실한 건, 세례자 요한의 운동에 예수 역시도 진심어린 공감을 보였으며, 예수 역시도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2 (요한 3,22)}}} 다만 애초에 세례자 요한과의 관계가 어떠했든 간에, 세례자 요한과는 구분되는 독립된 활동으로서 예수 운동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례자 요한과의 만남은 예수가 해나갈 사역의 기본 틀을 형성하게 되기에 당연히 매우 특별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르사이나 사두가이파에 대한 날선 비판은 요한이 더 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진 않았다. 애초에 침례를 주면서 죄사함과 회개를 외친 것 또한 사두가이파가 독점하고 있는 수익 사업 및 성전 중심 사상에 가장 치명적으로 미친 경제적 일격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세례 요한이 당대에 평판은 더 좋았던 점은, 세례 요한은 분명히 본인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천명했었고, 본인이 신의 아들이니 뭐니 얘기도 일절 한 바 없던 반면 예수의 자의식은 적어도 그에게 가장 호의적인 유대인이 보기에도 상당히 근거 없을 만큼 높았던 데 있었다.[* '신의 아들'이란 워딩 자체는 그 용어가 적어도 당대엔 위대한 위인들이나 영웅한테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었던 호칭인만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신성 자칭이나 신성 모독적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별 업적도 없는 30대 초반 설교가 주제에 본인이 이미 역사적 영웅급 인물임을 대놓고 천명하고 다녔으니 적어도 당대인이 보기엔 근자감에 빠진 인간으로 볼 개연성은 차고도 넘쳤다. 동양사에 비슷한 경우로 본인이 악의나 관중급이라고 젊은 제갈량이 자부하자 동시대인이 어이 없어했던 사례가 있다.] 그리고 사두가이파의 성전 수입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요한보다도 더 사두가이파를 싫어했을 바리사이파 입장에선 아무래도 상관없거나 오히려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런데도 세례자 요한이 일찍 최후를 맞이한 건 그의 주된 활동 무대가 하필이면 예루살렘이었던데다, 세속권력자인 헤로데 안티파스를 대놓고 공격하는 실수를 저질러서였다. 그래서였는지 예수의 초기 행보는 이를 반면교사삼아 예루살렘은 가급적 피하는 한편, 세속권력자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초기엔 자제하는 형태가 보인다. 그리고 요한이 한없이 금욕적이었던 것도 거울삼아, 예수 집단은 요한처럼 금욕을 일부러 하는 행위는 다소 멀리하게 된다. 한편 요한이 광야에서 먹고 산 메뚜기와 꿀은, 성서학자들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쥐엄나무]] 열매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이 그리스어로 서술되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쥐엄나무는 실제로 히브리어에서 메뚜기 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대추야자는 지금도 중동에서는 그 즙을 꿀 대용품으로 사용한다. 특히 유대교 측은 저 둘을 가난한 이의 음식의 대표로 여기는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어, 이스라엘 현지에 가보거나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면 저걸 정설로 여길 정도[* 관광 안내판에 써 있다.]며, 유대교의 영향이 짙은 서구에서는 캐롭 나무를 '요한의 빵'이라고 부르는 등 상당히 일반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광야에서는 쥐엄나무랑 대추야자를 은근 쉽게 찾을 수 있으나 메뚜기랑 석청을 찾아서 먹기는 불가능 수준이라는 일반 상식 수준 문제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메뚜기를 먹으려면 마땅히 메뚜기의 먹이가 될 것이 있어야 한다. 헌데 메뚜기의 주식은 곡식과 풀이다. 황량한 광야에 사람 1명이 먹고 살 정도로 많은 메뚜기가 살 정도로 곡식과 풀이 있는가? 또 석청은 꿀이다. 그럼 꿀을 만드는 꽃이 필요하고 꽃은 다시 풀로 연결된다. 즉 광야에서 메뚜기와 꿀을 찾는건 푸른 들판에 곡식도 많은 광야를 찾는 것과 같다. 차라리 일부러 그런 곳에서 메뚜기와 꿀만 골라먹었다면 모를까 진짜로 광야에서 메뚜기와 꿀만 먹기는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문제는 메뚜기는 몰라도 꿀은 당대에는 지역을 막론하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귀한 사치품이었다는 점이다. 그게 광야에서 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메뚜기와 꿀만 먹고 산다는 건 절대 고된 생활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이건 메뚜기와 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기도 하다. 현대로 치면 사막에서 [[푸아그라]][* 사실 이게 오히려 구하기 쉬웠을 수도 있다. 이집트에서도 푸아그라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듯 사막에 기러기는 날아오기 때문.]와 [[트러플]]을 먹으며 버텼다는 소린데 이게 어딜 봐서 고된 생활이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